서울의 거리 이름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지명 속에 담긴 역사와 정체성을 시대별로 정리합니다.
서울의 거리 이름은 단순한 위치 안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시대의 권력, 문화, 정체성을 담은 기록이자, 지리 공간을 둘러싼 인간의 기억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후 군정기, 그리고 오늘날까지, 서울의 거리명은 수없이 바뀌었고, 그 안에는 지배와 저항, 단절과 복원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서울의 거리 이름이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시대별로 살펴본다.
1. 조선시대: 방(坊)과 동(洞) 중심의 전통 지명
조선시대의 한성(서울)은 ‘5부 52방’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部)’는 도심의 행정 단위, ‘방(坊)’은 거주 및 생업 공간이었으며, 골목 중심의 자연발생적 지명이 주를 이뤘다. 종로는 ‘종각이 있는 거리’, 서대문은 ‘서쪽 대문이 있는 지역’, 청파동은 ‘푸른 언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 종로(鐘路): 종각(보신각)에서 비롯된 명칭
- 서대문: 조선 도성 서쪽 대문 '돈의문'에서 유래
- 청파동: 청색 언덕의 지형 특징 반영
이처럼 자연지형, 기능, 위치, 지역민의 생활이 거리명에 녹아 있었고, 한문과 한글이 혼용되며 지역의 전통성을 반영했다.
2. 일제강점기: 지명 강제 개정과 일본식 명명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은 경성(서울)을 식민지 근대 도시로 개조하며 거리 명칭을 일본식 체계로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전통 지명은 폐기되거나 축소되었고, 일본 천황의 이름, 일본식 행정 용어, 상업 중심 용어 등이 도입되었다.
주요 예시:- 명동 → 명치정 (明治町): 일본 메이지 천황 이름에서 따옴
- 충무로 → 혼마치 (本町): 일본 본점 거리라는 의미
- 황금정, 영락정 등 상업 용어를 지명에 차용
또한 일본은 ‘정(町)’과 ‘통(通)’ 같은 일본식 주소체계를 도입하고, 거리마다 숫자 정목(丁目)을 부여했다. 예: 본정 1정목~4정목 등. 이 체계는 관리를 쉽게 하고 도시를 체계화함과 동시에, 조선의 전통 공간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3. 해방 후 군정기: 일본식 지명 폐지와 과도기 명명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일본식 거리 이름을 폐기하고, 전통 지명 복원 또는 새로운 이름 제정에 나섰다. 하지만 행정 인프라 부족으로 기존 명칭을 그대로 쓰거나, 한자음을 그대로 옮긴 지명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례도 존재했다.
- 명치정 → 명동 (한자로 음만 살리고 의미를 탈색)
- 혼마치 → 충무로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에서 유래)
- 영락정 → 종로5가 (위치 중심으로 새롭게 명명)
이 시기는 지명 정비보다는 생존과 행정 복구가 우선되었기에, 정치적 상징성 중심으로만 지명이 복원되거나 변경되는 한계도 있었다.
4. 현대: 상징성과 실용성이 공존하는 지명
1970년대 이후 서울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기존의 전통·식민·군정기 지명을 통합하여 ‘도로명 주소 체계’가 등장했다. 종로, 강남, 을지로 같은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이름은 유지되었고, 신도시나 대규모 개발 지역에는 새로운 지역 브랜드형 이름이 부여되었다.
예시:
- 삼성로, 디지털로, 선릉로: 기업명과 IT산업 반영
- 한강로, 강변북로: 실질적 방향성과 지리 반영
- 세종대로, 퇴계로: 역사 인물 이름을 통한 정체성 강조
5. 거리 이름이 말해주는 기억과 권력
서울의 거리 이름을 살펴보면, 단순히 공간을 지칭하는 명칭이 아니라 당시의 지배 구조, 사회 흐름, 문화 가치가 반영된 일종의 사회적 문서다. 일제강점기 거리명은 통치와 억압의 도구였고, 해방 이후 지명 복원은 정체성과 주권 회복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거리 이름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새로운 명칭이 만들어질 때마다 사회와 시대의 맥락이 함께 각인된다.
결론: 지명은 도시의 자서전이다
서울 거리 이름의 변천사는 곧 한 도시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정체성을 회복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거리마다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가 역사의 단편이며,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사람과 기억을 연결하는 역사 인문학적 체험이다. 오늘도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우리는 도시의 과거를 밟고 있는 셈이다.